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5년 일본시리즈 (문단 편집) == 여담 == * 최초로 [[지명타자]] 제도가 적용된 시리즈였다. 이 당시 지명타자 제도는 격년제로 7차전 모두 [[홈 어드밴티지]]를 얻는 리그의 규칙을 따라 적용키로 했으나, 수정을 하여 1987년부터 [[퍼시픽 리그]] 홈구장에서만 [[지명타자]]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2019년 기준으로 유일한 전 경기 지명타자 시리즈가 되었으며, 한신은 2019년까지는 전 경기 지명타자제 시리즈에서 승리한 유일한 구단이 되었다. 그러다 [[2020년 일본시리즈]]에서 모든 경기에 지명타자가 적용되며 한신은 '''유일'''에서 '''최초'''로 칭호가 바뀌었다. * 이 해 우승으로 [[간사이]] 일대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당장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던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의 초대박 흥행과 함께 찾아온 우승이어서 겹경사가 터졌고, 특히 [[오사카]]에선 사람들이 한신 선수들과 닮은 사람들을 [[도톤보리 강]]에 ~~투척~~ 입수시키는 일까지 벌였는데, 이때 외국인이던 [[랜디 바스]]와 비슷한 사람을 찾지 못하여서.. '''[[커널 샌더스의 저주|어떤 통닭집의 호호 할아버지 인형을 지들 멋대로 강에 입수시켰고 이에 분노하신 할아버지 인형께서는 한신에게 끝없는 저주를 내리신다.]]''' * 양 팀 감독이었던 [[요시다 요시오]]와 [[히로오카 타츠로]]는 같은 [[유격수]]로써 현역 시절 화려한 명수비를 무기로 서로 경쟁하던 사이였다. 일본시리즈에서 패배한 히로오카는 이 해를 끝으로 사임했고 다시는 감독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10년후 [[치바 롯데 마린즈]]의 단장이 되어 겨우 암흑기를 벗어나려던 팀을 다시 거하게 말아먹었다.~~ 히로오카의 후임 감독은 [[모리 마사아키]] 세이부 코치였으며 감독 취임 후 일본시리즈 8회 진출 및 6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 시리즈 MVP는 [[랜디 바스]]였다. 이해 [[센트럴리그]] 최초의 외국인 타격 [[삼관왕]]에 오르며 리그 MVP까지 수상한 바스는, 일본시리즈에서도 타율 .368(19타수 7안타) 3홈런, 9타점으로 시리즈 3관왕이 되었다. 시리즈 1차전부터 홈런을 뿜어 내며 3경기 연속 홈런. 차원이 다른 용병이었다. 세이부의 히로오카 감독은 시리즈에서 지고 나서 "다시는 저런 괴물은 상대하고 싶지 않다." 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이 해 한신 타이거즈 요시다 요시오 감독의 투수운용은 매우 돋보였다. 당시엔 일반적으로 에이스급 선발투수들이 매경기 완투 완봉 하던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풍토였는데, 요시다 감독은 약한 선발진을 보완하기 위해 노무라, 후쿠마, 나카니시, 야마모토 등 [[계투]]진을 적극 활용해 게임을 풀어나갔다. 선발투수의 완투를 당연하게 여기고 메인 계투 투수는 팀 당 1,2명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선발들의 [[퀵후크]]와 환상적인 계투운용은 타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한신 투수진이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물론 당시 [[백스크린 3연발|11점을 내줘도 12점을 뽑아내던]] 타선의 힘으로 버텨준 게 컸다.] 당시 일본 방송에서는 '에이스 없이 이뤄낸 우승'이란 제목으로 특집방송을 방영한 적이 있을 정도다. * 16년 후인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가 우승한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 특별히 강한 선발투수 없이 타선의 힘으로 우승했고,[* 2001년 두산은 선발투수 중에 10승을 거둔 투수가 없었다.] 외국인 강타자가 중심에 있었으며,[* 1985년 한신은 랜디 바스, 2001년 두산은 타이론 우즈. 둘다 그해 시리즈 MVP를 차지한 것도 공통점이다.]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공교롭게도 우승을 내준 구단은 같은 [[삼성 라이온즈|라이온즈]]다. 거기다 둘은 자매구단답게 그담해 시리즈 우승한거까지 같다. * 이 해 우승은 시즌 도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 肇)의 영전에 바치는 선물이기도 했다.[* 나카노 사장은 야구 경험은 전무했으나, 구단 사장이 된 후에는 구단을 아는 것도 임원의 임무라 말하며 스포츠 신문 등을 보며 야구에 대해 공부했고, 응원가가 적힌 종이를 관객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부르자고 말하기도 했으며, 사고가 나기 이틀 전까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수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격려 인사를 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카노 사장의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일주일 뒤까지 한신은 그 기간 동안에 있던 경기에서 모두 져버리면서 6연패에 빠지는 바람에 선수들의 사기가 땅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실제로 6연패 때문에 잠깐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1위를 허용하면서 우승에 실패할 뻔하기도 했다.] 참고로 사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한신 선수들이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이동할 때 탔었던 비행기가 사고기였다고 한다. 해당 사고기[* 심지어 김포-나리타 단거리 국제선에도 뛴적이 있었다.]는 당일 사고 몇 시간 전 하네다~후쿠오카 노선을 비행했는데,[* 당시 한신과 주니치가 후쿠오카에서 게임을 했고 한신은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일정으로 인해 홈인 [[한신 고시엔 구장|고시엔 구장]]에 못 들어가고 [[죽음의 원정]]을 다니고 있었다.] 만약 선수단이 탔을 때 사고가 났다면... '''이 항목에 [[한신 타이거스]]라는 말 자체가 적혀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이 일본시리즈에선 사자 팀이 준우승했지만, [[한국프로야구/1985년|한국]]에선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우승|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한신과 삼성 모두 창단 첫 우승이란 공통점이 있다. * 우승이 결정된 6차전의 승리 투수 [[리치 게일]]은 5년 전에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인 [[1980년 월드 시리즈]] 6차전에서 패전투수가 되어 ~~만패~~[[필리스]]의 첫 우승을 허용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필리스와 한신 다 첫 우승이고 6차전에서, 그것도 세번째로 나간 시리즈에서 우승을 결정한 게 너무 절묘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두 시리즈 모두 모두 2승 - 2패 - 다시 2승 테크로 우승했다! 그리고 캔자스시티도 이해 월드시리즈를 [[2013년 한국시리즈]]처럼 우승했다. *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대형 사철]] 야구단끼리 맞붙었던 일본시리즈로 인식되고 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는 [[세이부 그룹]] 산하의 자회사인 '''[[부동산]] 기업''' 코쿠도 계획(国土計画)에서 운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대형 사철 시리즈라 할 수는 없다. [[대형 사철]] 야구단이 맞붙은 건 [[한신 타이거스]]와 [[난카이 호크스]]가 맞붙은 [[1964년 일본시리즈]]가 유일.[* 여담으로 [[한신 타이거스]]와 [[토에이 플라이어즈]]가 맞붙은 [[1962년 일본시리즈]]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당시 토에이 구단 보유권이 이전에 [[토에이]]를 보유했던 [[토큐 전철]] 산하의 '''토큐 베이스볼 클럽'''에 있었기에 대형 사철 시리즈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구단 보유권만 가졌을 뿐 실질적인 구단의 소유 및 운영은 [[토에이]]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대형 사철 시리즈라고 보긴 힘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